1권 110111

2권 110116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대해서 느끼기에.


개미에서 한번 크게 발전이 있었고


신에서 크게 한번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개미와 신사이에 나온 "뇌" "나무" 등은 개미를 안 읽고 봣다면, 대단한 글이나 개미 읽은 후에 보기엔 조금 밋밋한 점이 있었다.


신 이후에 나온 "파라다이스" 역시 신을 보기전에 봤으면 좋았을 책이지만


신을 보고 나면 그 단계를 들어서버린 느낌이다.


신에서 이야기하고자 햇던 것들이 녹아 있는. 결국엔 뇌, 나무 등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해서 개미가 써지고


파라다이스에서 각종 있을법한 미래와 과거 얘기를 풀어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신이 써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유머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물음에 주인공이 유명한 코미디언의 부와 지위를 버리고


그 유머를 찾아가는 부분은 단편이 줄수 있는 묘한 생각의 단초이지만.


결국 유머를 집단이 있고 그 집단은 선의를 가지고 유머를 퍼뜨리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한 견습생을 받아서 교육시키고. 하는 부분들은 


신의 단계를 올라가는 것과 아주 유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에서 얼마나 성장할까 하는 기대감을 준다. 키산드라의 거울. 그 이야기는 같은 단계의 글을 보여줄것인가. 다음 단계를 보여줄 것인가.

by 무위자연 2015. 12. 7. 15:05

오랜만의 김훈씨 소설이다.


공무도하 - 사랑하는 낚시꾼이 강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의 아내가 남편을 불렀다는 그 노래.


그럼 김훈씩 리얼리즘으로 이루어진 사랑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장마로 시작하여 삶의 씁쓸함이 묻어나는 미군의 폭격장으로 쓰인 뱀샘을 앞바다에 두고 있던 해망이란 바닷가 지역의


이야기다.


아차. 김훈이다.


삶의 허망함과 쓰디씀을 노래하는 김훈이다. 사랑이야기일수도 있다는 예상은 그지 없이 무너졌다.


특유의 묘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색에 대한 묘사, 맛과 냄새에 강한 표시. 그리고 사물도 동물도 웬만한 현대인보다 더 고뇌하는 그 묘사력.


해망이랑 지역의 지나간 변화사. 그리고 그 해망과 연계하여 살아가는. 


노상 해망으로 취재가는 문정수 . 그 문정수가 처음으로 알게된 출판사 직원이었던 노목희.


창야에서 해망으로 흘러들어왔다가 고철팔고 장기팔다 창야로 돌아간 장철수. 그 장철수의 지인이 된 베트남 출신 물질하는 여자. 후애


소방관을 하다 해망으로 내려가 고철사업하는 회사 임원이 된 박옥출 - 장철수와는 신체를 공유한 사이다.


해망에서 아이를 키우던 개한테 잃고 숨어살다 결국 후애와 살게된 오금자.


해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김훈식 이야기와 표현이 반가웠고. 김훈의 이야기는 언제나 씁쓸함과 답답함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이고 주변이야기고 내 삶의 느낌인지라 그 느낌을 포기할수 없다


> 최근에 또 책 내셨더라고요



by 무위자연 2015. 12. 7. 15:04

97년에 나온 한반도의 개정판이다.


10.26 이란 "가장 논란이 많은 박정희 대통령",,,의 총살사건 날짜이다.


한 소설이 10년만에 다시 개정되서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이벤트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당시 한반도를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생각 나지 않는 경험을 통해서.


역시나 책을 읽으면 단 한 줄의 서평이라도 남겨놔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사실 이 책은 한반도때보다 더 팩션에서 팩트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소설적인 재미. 극중 인물 간의 갈등 보단


이런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그것의 증거는 빈약하기짝이 없지만 정황 논리에 의한 전개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을 친미정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하고 자주 국방의 표상인 핵개발에 관련된 모든 것을 거머쥐고


한국을 미국의 무기 종속화 및 버려지는 무기로 로얄티를 벌어들이는 전진기지로 만드는 일련의 사건(10.26 / 12.12. / 5.18)을 설계하였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는 참으로 그럼직하고. 민족적? 열의를 불태우기에는 충분하다. 


이야기가 100% 사실이냐는 중요치 않다. 형식이야 어떻든 이건 소설이니까.


그래도 이야기 재미 이상의 뭔가가 있다면.


미국, 북한 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은 더 냉철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우리나라를 조금은 더 괜찮에 만들려면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외세에 덜 휘둘리고


각자가 조금은 더 스스로 애국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 아닐까.

by 무위자연 2015. 12. 7. 15:04

1부 - 101209

2부 - 101219

 

모든 분야에서 빼어남이 뭔지를 보여주었던 조선의 세종대왕.

모계의 천민 신분을 이어가야 하는 노비 장영실이 만나서

조선의 하늘을 열었고, 그 열었던 하늘을 닫아야 했던 이야기이다.

 

장영실은 혈연으로 인한 한을 한으로 남겨두지 않고

자신의 영민한 머리와 호기심을 채우는 에너지로 사용한다.

비록 노비여서 공부를 할수도, 관직에 나아갈수도 없을뿐 아니라 관노로서 사노로서 온갖 잡무를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실사구시 철학을 실현하고,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 살고

그런 삶을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결혼도 지양한다.

그런 삶의 방향을 잡을수 있었던 것은 스승님들의 은혜 덕분이기도 하다.

그 은혜로움의 끝이 태종과의 만남이다.

 

그 태종이 그 세종과의 만남을 마련해주었다.

그래서 장영실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잘하고 잘하고 싶은 분야, -천문학을 위한 의기 제작-에 전력을 다하며,

중국유학을 2번이나 다녀오는등. 그러면서 면천에 결혼에 높은 관직까지 받고,

어느 정도 유학 숭상만을 하는 다른 관리들에게 인정도 받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너무 약소한 "문명국"이엇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세종의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조선의 독자적인 역법을 구축했다는 사실에 중국은 3번을 크게 경고한다.

1번째 경고때 세종 이하 모든 관직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사신을 접대하였으나.

2번째 경고때 세종이 중국 황제에게 자신과 조선을 낮추며 중국에게 잘 봐달라고 이해해달라고 조서를 쓴 부분을 보는 순간. 18.. 이란 말밖에 안 나오는

약소 국의 서러움이 전해졌다.

3번째 경고때 세종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장영실로 대표되는 조선의 독립적인 천문학을 덮고 만다.

 

꽃 피우지 못한 세종과 장영실의 꿈.

그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것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의 과학입국......

 

by 무위자연 2015. 12. 7. 15:03
 

    QByteArray s_byte;

    s_byte.append((char)0x7e);

    bool ok;

    int t = s_byte.toHex().toInt(&ok, 16);


    QByteArray tmp,tmp2;

    //tmp.append((char)0x00);

    //tmp.append((char)0x01);

    tmp.append((char)0x7e);

    tmp.append((char)0x0c);


    tmp2.append((char)0xff);

    tmp2.append((char)0xff);


    bool isok;

    int size = 0;

    //Log() <<  QString().sprintf("4 : %05f", tmp2.toDouble(&isok));

    size = tmp2.toHex().toInt(&isok, 16);

    Log() << size;

    size = tmp.toHex().toInt(&isok, 16);

    Log() << size;

    Log();


테스트는 1자리, 2자리까지만 해봄.

0~FFFF까지.


by 무위자연 2015. 11. 18. 14:06

아내와 아이들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극도로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 한 무성영화 배우의 작품을 보면서 그 희극성에 감화되어 


그닥 유명하지도 다작을 하지도 않은 그 배우의 지난 영화를 찾아내고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쓰고 하면서


조금이나마 더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그 영화배우가 사실은 사고로 죽거나 실종된 것이 아닌 우발적 살인으로 인해서 자신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그 영화배우의 촬영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연기하는 어머니를 둔 한 여자를 통해서 알게 된다.


그 배우는 실종된 이후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 듣는다. 그리고 그 여자와 교감하게 된다.


5일간의 치열한 사투끝에 주인공은 그 여자와 그 배우가 아직 살아있는 그 보금 자리로 가보지만,


그 배우는 급작스레 죽고, 그 배우의 아내는 그 배우의 유언대로! 실종이후에 남긴 영화 및 모든 증거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 여자는 그 배우의 자서전을 쓰고 있었는데 조금의 자료라도 남기려다 그 배우의 아내를 죽게 하고. 자신도 자살하게 된다.


주인공은 메말랐던 가슴에 단 며칠간의 인연으로 마음속 깊이 교감햇던 그여자를 그리며, 그렇게도 힘겨웠던 삶을 


이어가게 된다. 며칠간의 희망고문. 그 여자와 앞으로는 행복한 나날들만 그려낼 것을 기대하며, 행복해하다, 그여자가 죽은 순간부터는


다시 예전상태와는 다른 메마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감성의 이동, 사건의 역동성 보다는 디테일이 아주 강렬한 그런 이야기다. 헥터만이라는 배우가 마치 살아있었고 그것을 자서전 혹은 채록한 듯한 생각이 들만큼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딱 지금의 내 감성이 절절한 그런 이야기.

by 무위자연 2015. 11. 17. 15:02

100808 1권

100921 2권

101117 3권


중3때 논술 학원 다닐때 숙제였던 책이었다. 당시 2권짜리에 조악한 편집본이었기도 하지만.

억지로 읽는 거였으며 내용이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100여쪽? 읽다가 포기했었던 책이다.

특히나 초반에 캐릭터를 잡아가면서 셋째 아들의 성직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신성 모독과 그 반론을 펼치는 부분이

결정적으로 손을 놓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 성당에 관련된 신성 모독과 그에 대한 반론(조시마 장로얘기포함)은 지금도 여전히 어렴풋이만 이해할 정도로 어려운 부분이다. 비기독교인으로서.

내용은 대충이러하다. 지극한 욕망의 화신같은 아버지가 있고 그 세 아들이 있으며 아버지와 첫째가 한 여자를 놓고 연적이 되며,

첫째가 원래 약혼자 따로 있었는데 그 약혼자는 둘째와 눈이 맞는다. 그리고 그 약혼자는 원래 따로 만나던 옛남자가 있고.

셋째가 그 사이를 중재하려 하나 아버지는 죽고. 첫째는 그 아버지를 죽인 범인으로 몰린다.

내용은 소위 "막장" 이나 그 막장을 표현해내는 방식에는 철학과 종교,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계몽운동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 본연의 성정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식 반전까지.

읽기도 어렵고 분량도 만만치 않으나. 도전해볼만한 작품이었다.

10년쯤 뒤에 다시 보고 싶다. 더 잘 이해될수 있을만큼 연륜이 쌓일테니

by 무위자연 2015. 11. 17. 15:00

뿌리 깊은 나무 , 바람의 화원의


팩션에 정점을 찍은 이정명 작가의 변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부러 전작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배경 및 인물을 모두 서양식으로 가공하였다


캐릭터 창조에는 보통이상의 감흥이 없었으나


이야기의 장소가 이루어지는 반도와 섬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안개" 라는 메타포를 이끌어내는 배경 창조에 충격을 받았다.


이야기가 길지 않은 탓에 그 세심함이 떨어지긴하나 이런 생각에서 시작할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찌보면 어떤 미드에서 봤을수도 있는 듯한 반전 결말.


메코이와 헐리 그리고 연쇄살인범 구도에서 시작되나


어느세 라일라 메코이 살인범으로 초점이 자연스레 바뀌고


결국엔 라일라로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필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


추신 : 그래서 범인은....

by 무위자연 2015. 11. 17. 14:59

도발적인 제목이나 나름이 논리와 원칙이 있다.


글자 그대로 교리 그대로의 예수라는 것은 없고 그것이 절대적일수 없다


신앙이란 책에 있고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심재(마음의 굶주림)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래 예수님이 하고자 한 그 의도를 파악하고 따라가는 것이 진정 나아갈 길이며 그것은 종교간의 평화, 나아가 전 지구적인 윤리를 지키는 일이다


왜나하면 남과 우리를 가르고 남에게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배교 하는 , 전쟁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란 것은 없다. 오직 화해와 평화만 있을뿐이고.


모든 종교의 지향점은 하나이며, 그런 점에서 노자, 장자, 예수,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동일하나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by 무위자연 2015. 11. 17. 14:59

조선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켜줄 책이다.


성군으로만 혹은 충신으로만 여겨지던 사람들의 다른 이면을,


폭군임이 널리 알려졌지만, 왜 그럴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이유를 관찰하는,


하지만 야사나, 카더라통신이 아닌, 실록을 기반으로 한 기자의 냉철한 시각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상당히 신뢰감을 준다.


짧은 이야기의 모음이라 읽기도 편하다. 그중의 한 장이 책 제목을 갈음한다. 왜 버렸을까.


홍길동이 막 쓸수 있는 이름이 아님을 알았다

by 무위자연 2015. 11. 17. 14:58